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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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ssia Mönchengladbach'''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II

[image]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Borussia Mönchengladbach'''
<colbgcolor=#ffffff> '''정식 명칭'''
Borussia Verein für Leibesübungen 1900 Mönchengladbach e.V.[1]
'''애칭'''
Die Fohlen(망아지), Die Fohlenelf(11마리의 망아지), Die Borussen(프로이센인), Gladbacher(글라트바흐의 일원)
'''창단'''
1900년 8월 1일
'''소속 리그'''
'''분데스리가(Bundesliga)'''
'''연고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뒤셀도르프 현 묀헨글라트바흐
(Mönchengladbach, Nordrhein-Westfalen)
'''홈 구장'''
보루시아 파르크 (54,057명 수용)
(Borussia Park)
'''라이벌'''
'''1. FC 쾰른''',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바이어 04 레버쿠젠 - '''라이니셰스 더비'''[2][3]
'''슬로건'''
Die Raute Im Herzen(가슴 속의 다이아몬드[4])
'''회장'''
[image] 슈테판 시퍼스(Stephan Schippers)
'''부회장'''
[image] 라이너 본호프(Rainer Bonhof)
'''이사장'''
[image] 롤프 쾨니히스(Rolf Königs)
'''단장'''
[image] 막스 에베를(Max Eberl)
'''감독'''
[image] 마르코 로제(Marco Rose)
'''수석코치'''
[image] 레네 마리치(René Marić)
[image] 올리버 뇌빌(Oliver Neuville)
'''주장'''
[image] 라스 슈틴들(Lars Stindl)
'''부주장'''
[image] 얀 조머(Yann Sommer)
'''공식 웹 사이트 및 SNS'''

'''한국 팬 사이트'''

'''지난 시즌 성적
(2019-20 시즌)
'''
분데스리가 4위
'''우승 기록'''
'''★★'''[5]
'''분데스리가 (1부)'''
(5회)
1969-70, 1970-71, 1974-75, 1975-76, 1976-77
'''2. 분데스리가(2부)'''
(1회)
2007-08
'''DFB-포칼'''
(3회)
1959-60, 1972-73, 1994-95
'''DFL-슈퍼컵'''
(1회)
1975-76 (비공식)
'''UEFA 유로파 리그'''
(2회)[6]
1974-75, 1978-79
'''클럽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알라산 플레아(Alassane Pleá)
(2018년, From OGC 니스, 2300만 유로)
'''최고 이적료 방출'''
그라니트 자카(Granit Xhaka)
(2016년, To 아스날 FC, 4500만 유로)
'''최다 출장'''
베르티 포그츠(Berti Vogts) - 526경기 (1965-1979)
'''최다 득점'''
유프 하인케스(Jupp Heynckes)[7] - 292골 (1963-1967 / 1970-1978)
'''영구 결번'''
12[8]


'''2020-21 시즌 골송'''
1. 개요
2. 역사
2.1. 창단 이래
2.2. 2010-11 시즌
2.3. 2011-12 시즌
2.4. 2012-13 시즌
2.5. 2013-14 시즌
2.6. 2014-15 시즌
2.7. 2015-16 시즌
2.8. 2016-17 시즌
2.9. 2017-18 시즌
3. 선수단
4. 응원가
5. 여담
6. 유명 선수
7. 둘러보기


1. 개요


독일의 프로 축구팀. 최상위리그인 분데스리가에 소속되어 있다.
연고지는 독일의 대표적인 군수산업 도시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묀헨글라트바흐 시(Mönchengladbach)이며, 경기장은 보루시아 파르크(Borussia Park)이다. 연고지인 묀헨글라트바흐의 식별부호인 '''엠게(MG)'''[9]로 약칭하기도 한다.
1970년대 중반에 독일유럽을 제패하는 등 정점을 찍은 직후 승격과 강등을 반복했다. 그러나 2010-11 시즌에 16위를 찍은 직후 5시즌 연속 10위권 안에 들었으며, 특히 12-13 시즌 빼고는 모두 5위권 안의 성적을 거두었다. 더구나 14-15 시즌에는 근래 최고 성적인 '3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꽤나 알짜배기 선수들을 영입하고 육성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FC 바이에른 뮌헨과 여타 선두권 팀들에게 때때로 일격을 가하는 강팀으로 돌아왔다.
독일에서도 유서깊은 명문 클럽으로 유명한 선수들도 많이 배출했지만 안타깝게도 2000년대 접어들면서 몰락의 길을 밟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다행히도 어느 정도 회복세에 접어든 듯. 40년 간 우승컵을 들어올리지는 못 했어도 여전히 인기는 많은 편이라 약 4만명의 회원과 많은 서포터를 가지고 있으며, 이 규모는 독일에서 여섯 번째다. 1970년대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서 리그를 제패하는 모습과 특유의 공격 축구 때문에 독일에서 진보적인 성격을 가진 중년 팬들이 은근히 좋아하는 클럽이라고. 클럽의 상징은 망아지로, 마스코트의 이름은 Jünter다.[10]

2. 역사



2.1. 창단 이래


1900년 지역 청년들의 축구 동호회에서 출발해 점차 세를 키우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11] 1960년 처음으로 독일 컵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지만,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에는 바로 합류하지는 못했다. 이는 당시 지역 리그에서 성적이 아주 우수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1965-66 시즌부터 합류해 그 뒤로 분데스리가의 강호로 군림하기에 이른다.
팀의 최전성기는 1970년대로 1970년대에만 무려 '''5번의 리그 우승, 컵 대회 2번 우승, UEFA컵 우승[12] 2회, 그리고 유로피언 컵 결승에까지 오르는''' 그야말로 리그를 정복하는 수준의 실력을 자랑했다.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우도 라텍과 같은 명 감독과 귄터 네처, 유프 하인케스, 울리 슈틸리케, 베르티 포그츠, 우베 란, 알란 시몬센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앞세워서 그야말로 1970년대 독일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이 시기에 그들의 강대함을 잘 알려주는 기록이 분데스리가 한 경기 최다 골 차이 경기인데, 1978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무려 '''12:0'''으로 박살낸 적이 있었다. 1974-75시즌부터 1976-77시즌까지 기록한 '''3시즌 연속 우승'''은 오직 분데스리가에서는 바이에른 뮌헨과 묀헨글라트바흐만 기록한 것이다.
하지만 1979년에 유프 하인케스가 감독이 된 이후 1980년대 접어들면서 재정 문제가 겹치고, 점차 축구 리그가 돈의 흐름이 좌우되면서 점점 쇠락기에 접어든다. 인재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닌데, 로타어 마테우스나, 올리버 노이빌레, 세바스티안 다이슬러, 마르코 마린, 마르코 로이스와 같은 재능들은 꾸준히 출현했지만, 이들을 붙잡을 돈이 없었다. 1980년 프랑크푸르트에게 UEFA컵 우승을 내주고[13], 1984년 골득실 차로 아깝게 우승을 놓친 이후, 계속 하향곡선을 그렸다.
급기야 1999-2000 시즌 첫 강등을 당한 후, 그 뒤로는 강등과 승격을 반복했다. 2부리그에서 2번째 시즌이었던 2000-2001시즌에 2위를 기록하며 승격을 했지만 1970년대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했고 계속 하위권에서 맴돌았다. 2004-05시즌의 딕 아드보카트도, 2006-07시즌 팀의 레전드 유프 하인케스도 팀의 운명을 바꾸지 못했다. 급기야 2006-07시즌 성적부진으로 하인케스는 사임했고[14] 결국 그 시즌 최하위로 강등당했다. 1년만에 2부리그를 우승하며 다시 분데스리가로 돌아왔으나 계속해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2011-12시즌 4위로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전까지 21세기 글라트바흐는 단 한 번도 분데스리가에서 상위 50%(9위) 이내로 시즌을 마친 적이 없는 대표적인 중하위권 팀으로 꼽혔었다.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2004년 기존의 34,500명 수용가능한 뵈켈베르크슈타디온에서 54,067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보루시아 파크로 경기장을 이전하였다.

2.2. 2010-11 시즌


2라운드 레버쿠젠[15] 원정에서 6:3 맹폭격을 가하며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반기 내내 막장의 모습을 보이며 최하위를 굳건히 지켰다. 쾰른과의 지역더비에서 5:1로 승리하고, 바이에른 뮌헨에 3:3 무승부를 거두기도 했지만, 분데스리가 17경기에서 2승4무11패에 26득점 47실점, 그리고 홈에서 3무6패로 최악의 전반기를 보냈다. 마르코 로이스가 이끄는 공격은 위력적이었지만 경기당 3골씩에 육박하는 처참한 자동문 수비가 문제였다. 슈투트가르트 원정에서 0-7 패배, 프랑크푸르트, 브레멘, 도르트문트에게 4실점, 그리고 3실점 경기도 5차례였다.
윈터브레이크 후 후반기 초반 3경기에서 2승을 따내며 회생하는듯 했으나 결정적으로 강등권 경쟁팀이었던 슈투트가르트와 상파울리에 2연패를 당하며 미하엘 프론체크를 경질시켰고, 지난시즌 헤르타 베를린에서 답답한 나머지 사임한 감독 뤼시앵 파브르가 선임되었다. 파브르 감독 이전 묀헨글라트바흐는 22경기 4승4무14패에 56실점이나 내줄 정도로 막장이었지만 파브르의 부임 후 12경기에서 6승2무4패에 단 9실점만 내주는 짠물 수비로 탈바꿈하였다. 여기에 테어 슈테겐이 골키퍼계의 초신성으로 등장하여 기존의 골키퍼였던 하이머로트와 바일리가 경기당 2점 이상씩 실점하던 반면 6경기에서 단 3실점만 허용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파브르 감독은 데뷔전에서 샬케를 상대로 홈에서 2:1 승리를 거뒀고, 막판 우승팀 도르트문트를 홈에서 1:0으로 꺾는 등 3연승을 달리면서 상파울리와 후반기 DTD의 프랑크푸르트를 제치고 꼴찌에서 벗어나 16위로 오르며 기사회생했다. 결국 시즌 마지막 경기인 함부르크와의 원정경기에서 1:1로 비기면서 16위를 차지, 2부리그에서 3위를 차지한 VfL 보훔과 승강 PO를 치루게 되었다. 안방에서 열린 1차전은 막판 90분에 넣은 골로 1:0으로 이겼고 2차전 보훔 원정에서 1:1로 비기면서 겨우 리그 잔류를 결정지었다.

2.3. 2011-12 시즌


지난시즌 힘겹게 잔류에 성공했기에 비관적인 예상이 주를 이었다. 그러나 마르코 로이스, 미케 한케, 마르틴 슈트란츨, 단테 본핌, 로만 노이슈테터, 호바르 노르트베이트 등의 활약으로 개막전부터 몇년만에 원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잡아내더니 11월 28일까지 14라운 9승2무3패 승점 29로 1위 도르트문트에 득실차로 밀리는 2위를 달리다가 이후로 2월 13일 21라운드까지 리그 3위로 떨어져있다. 4위인 샬케 04에게 2점 차로 추격 중. 하지만 2위 뮌헨과는 1점 차이며 1위 도르트문트에겐 3점차로 아직 리그 우승 희망은 있었지만 결국 4위로 리그를 마감하였다. 11/12시즌부터는 분데스리가 4위팀도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묀헨글라트바흐는 12/13시즌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시즌 종료 후 에이스와 수비의 핵인 마르코 로이스단테는 각각 도르트문트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였다. 로만 노이슈테터도 샬케로 떠났다. 그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라니트 자카FC 바젤에서, 루크 데 용을 PSV에서, 수비수 알바로 도밍게스를 아틀레티코에서 영입했다.

2.4. 2012-13 시즌


전시즌 분데스리가 4위 자격으로 12/13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디나모 키예프와 격돌하게 되었다. 그러나 1차전 안방경기에서 1:3으로 패배했고 2차전 원정경기에서는 2:1로 승리했지만 득점차때문에 탈락하면서 유로파리그로 떨어졌다.
유로파리그 48강 추첨에선 페네르바흐체 SK, 올랭피크 마르세유, 키프로스 AEL 리마솔과 한 조를 이뤘는데 리마솔 원정에서 0-0으로 비긴 데 이어, 안방에서 페네르바흐체에게 2:4로 패하면서 유로파리그를 아무래도 포기한 느낌을 보여줬으나 5차전까지 2승 2무 1패를 거두면서 조 2위로 32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리그 12차전까진 11위를 지키고 있지만 7위와 승점 차는 1점으로 중상위권 진출 희망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후로 계속 추락하면서 10승 13무 11패로 리그 11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유로파리그 32강에선 SS 라치오와 맞붙어서 1무 1패(3-3,0-2)로 탈락했다.
시즌이 끝나고 주장 미케 한케가 프라이부르크로 떠났다.

2.5. 2013-14 시즌


하파에우막스 크루제를 영입하고 크리스토프 크라머를 임대영입했다.
전반기 홈에서 8연승 무적의 모습을 보여주며 도르트문트를 제치고 3위로 마감하였으나, 후반기 처음 7경기에서 승리를 따내지 못하고 총 9경기 무승으로 8위까지 떨어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며 9경기에서 6승으로 레버쿠젠과 볼프스부르크를 열심히 추격하여 33라운드에서 승점 55점으로 리그 6위를 기록했고 7위 마인츠랑 순위는 5점차라서 34차전을 져도 더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최소 유로파 진출은 확정지었다. 최종전이 바로 5위 볼프스부르크 원정(57점)이었는데 4위 레버쿠젠(58점)과 골득실도 같아서 34차전 여부에 따라 극적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걸린 4위를 차지할 수도 있었지만 때문에 볼프스부르크 원정에서 패하면서 6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에 나가게 되었다. 어차피 이겼어도 레버쿠젠이 브레멘에 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챔피언스리그를 갈 수 없었다.
시즌 종료 후 테어 슈테겐 골키퍼가 바르샤로 떠나 FC 바젤의 수문장 얀 좀머를 영입했다. 안드레 한토르강 아자르, 파비안 존슨도 데려왔다.

2.6. 2014-15 시즌


리그에서는 32라운드까지 2위로 뛰어올랐다. 전번 시즌에 막판 한방을 먹은 볼프스부르크랑 레버쿠젠을 3,4위로 밀쳐낸 상황이다. 다만 승점 1점차인 3위 볼프스부르크가 1경기를 더 남게둔 상황이라 이제 남은 2경기 아우스크부르크와 베르더 브레멘전을 다 이긴 다음, 볼프스부르크의 3경기가 지는 걸 바랄 수 밖에 없다. 어찌됐든 최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은 확정지은 셈. 최종 순위는 3위를 기록했다.
DFB 포칼에서는 8강전에서 2부리그팀인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에게 승부차기로 4-5로 져서 탈락했다.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에서는 보스니아의 FK 사라예보 원정에서 3-2로 진땀승을 거뒀지만 홈에서는 7-0으로 뭉개면서 가볍게 48강 플레이오프로 올라가 비야 레알, FC 취리히, 아폴론 라미솔을 상대로 3승 3무를 거두며 32강에 올랐다. 그러나 세비야 FC에게 2-3,0-1로 패하며 일찍이 탈락했다.
유로파리그에서 탈락하고, 포칼에서도 지면서 실패한 시즌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성공한 시즌이었다. 3위를 하면서 요 근래에 가장 좋은 성적으로 챔피언스 리그 직행 티겟을 얻었고, 유망주들의 성장도 보기 좋은 결과다. 감독의 전술도 훌륭하게 안착되었다. 월드 클래스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스트라이커 하파엘은 묀헨글라트바흐에서 항상 10골 정도는 넣어주던 꾸준한 스트라이커였는데, 이번 시즌에는 평소 보다 좋은 골결을 보여주면서 팀의 완벽한 주포로 성장하였다. 나이도 꽤 많은 스타라이커여서 다른 팀에 빼앗길 우려도 없는지라, 묀헨에서 앞으로 몇년은 꾸준하게 골을 책임질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시즌, 묀헨이 가장 성공적으로 생각하는 분야는 측면 플레이어다. 아주 싼 값에 데리고 온 안드레 한과 그동안 조금 아쉬운 모습만 보여주던 파트릭 헤어만이 말 그대로 대폭발하면서 팀의 주포가 되었다. 안드레 한 같은 경우는 완벽한 주전이 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팀의 슈퍼 조커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선발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파트릭 헤어만은 말 그대로 대 폭발하면서 팀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둘다 90, 91년생이라는 어린 나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팀에게 아주 좋은 소식이다. 단, 둘다 지나치게 좋은 모습을 보여준 탓에 국대로 소집이 되었고, 파트릭은 국대에서도 가끔씩 선발로 나간다는 점에서 팀 스쿼드 관리가 앞으로 많이 어려워 질 전망이다. 최전방에 막스 크루제도 엄청난 골결을 보이면서 팀의 주포가 되었고, 레버쿠젠에서 임대로 데리고 온 크라머도 엄청난 활동량을 보여주면서 팀의 큰 도움을 주었다. 라파엘이 가끔씩 버로우를 타는 스트라이커임에도 묀헨이 3위를 수정했던 이유가 바로 크루제의 골결이다. 중거리도 제법 잘 때리고, 문전 앞에서의 연계와 돌파도 아주 못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런 크루제가 다음 시즌에 볼푸스부르크로 팔려간다는 점이고, 팀의 중원을 책임졌던 미친 활동량의 크라머가 레버쿠젠으로 임대 복귀를 한다는 점이다. 묀헨글라트바흐는 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떠나는 둘에게 화환을 전달하면서 앞으로도 좋은 활약을 하라는 격려를 보냈는데, 그 동안 이적 때문에 배신자 취급을 받던 선수들이 넘쳐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아름다운 장면이다.
루시엥 파브르 감독의 전술도 아주 성공적으로 안착했는데, 이번 시즌 묀헨의 특기는 압박, 숏 패스, 역습이다. 잘못 들으면 무슨 티키타카처럼 들리는 전술이지만, 실제로 경기를 보면 절대로 티키타카가 아니다! 오히려 티키타카를 시전하는 팀을 물 먹이기 좋은 전술이다. 중앙에 미드필더를 밀집시켜서 상대의 공격 전개를 최대한 틀어막는데, 어지간해서는 묀헨의 미드 라인을 뚫는 것이 어렵다. 딱히 월드 클래스 수미를 보유하고 있는 구단은 아니지만, 미친 활동량을 자랑하는 크라머가 혼자서 2~3명을 괴롭히는 역할을 했기 때문. 크라머가 수비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닌데 그냥 엄청나게 뛰는지라 중앙에서 패스를 돌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상대의 수비 라인은 전진해서 공격 가듬을 하게 되는데 이 전진한 수비 라인에 크루제와 하파엘이 숨어있다가, 마빈 슐츠와 크라머가 끊어내는 순간 이들에게 연결된다. 크루제나 하파엘이 받는 순간 치달로 라인을 부수면서 골을 넣는 월클 스트라이커는 아닌지라 여기서 바로 골로 연결되는 않고, 대신 이 역습 상황에서 빠른 숏 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무조건 골을 넣을 수 있는, 환상의 공격 루트를 창출한다. 대부분은 헤어만이나 한같은 주력이 좋은 윙어에게, 즉 측면쪽으로 빠르게 전달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여기서 부터는 어지간한 수비수는 잡을 수가 없는 엄청난 주력 돌파가 시작된다. 특히 한 같은 경우에는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프린터인 오바메양, 로벤과 비견될 정도의 주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측면을 장악하면 패스를 주었던 라파엘과 크루제가 바로 박스 안 쪽으로 들어가서 기다리다가 크로스가 올라오면, 수비수가 적은 박스 안에서 손 쉽게 골로 연결하는 것이 이번 시즌 묀헨의 전술이다. 수비 라인이 전진한 상대에게 가하는 역습이기에 박스안에서 크루제와 하파엘을 방해할 수비수가 적은 상태인지라 골로 연결되기가 쉬운 전술이다. 묀헨 경기를 보면 공격을 끊어내고, 전진한 상대 수비 라인 바로 앞에서 숏 패스를 2번 정도 하다가 바로 치고 들어가서 골을 넣는, 정말 간결하고 쉬운 공격을 한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닌데, 일단 역습이라는 것은 최대한 빠른 상황에서 이루어지게 때문에 숏 패스라는 것을 하기가 어렵다. 헤어만이라는 특급 윙어를 보유한 묀헨만 사용 가능한 전술이다. 또한, 이 전술은 어디까지나 자신들 보다 강팀이거나,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대등한 경기를 할 때만, 사용가능한 전술이어서, 약체 팀과의 대결에서는 헤어만의 크로스와 중앙에서의 헤더만 사용하는 답답한 공격을 하게 될 우려가 있다. 헤어만은 분명 어린 나이에도 엄청난 스피드와 연계, 드리블 능력을 갖춘 준-월클로 평가 받지만, 망해가는 팀을 혼자서 살리는 임펙트를 보여주지는 못 한다. 마지막으로 크루제와 라파엘이 탈 압박이 아주 훌륭한 수준이 아니여서 집중력이 좋은 수비라인에게는 사용하기 어려운 전술이다. 단적인 예로 전반기에 바이에른 뮌헨을 만났을 때는 제대로 털렸지만, 후반기에는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진 뮌헨과의 리턴 매치에서 2:0 승리를 거두었다. 해당 경기는 이번 시즌 묀헨의 전술을 너무나도 잘 설명한 경기여서 묀헨의 팬이라면 꼭 봐야하는 경기다. 마지막으로 크라머와 슐츠가 중앙에서 끊어주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그냥 시종일관 얻어 텨지는 경기를 해야한다. 이미 언급했지만, 둘다 끊어내는 수비 능력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냥 많이 뛰면서 방해하는 타입이라서, 중앙에서 괴체, 로이스, 데 브리위너와 같은 태크니션을 만나면 답이 없다.

2.7. 2015-16 시즌


시즌 첫 경기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전에서 0:4로 완패한 것을 시작으로, 5라운드까지 5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다. 전 시즌 리그 3위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최악의 스타트. 4라운드 홈에서 함부르크 SV에게 3:0으로 털렸다. 5라운드에서는 FC 쾰른에 0:1패배.
이 일로 4.5년의 기간동안 글라트바흐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도르트문트의 클롭, 마인츠의 투헬과 더불어 글라트바흐의 대표감독이라 칭해지던 루시앙 파브레 감독이 자진사임을 했다.
게다가 챔피언스리그도 죽음의 조에 뽑혔고 1차전에서 리그에서 부진한 세비야에게 원정에서 3:0으로 졌는데 이 세 골 중 두 골이 페널티킥.결국 일찌감치 16강에서 탈락했다. 막판에 3위였지만 세비야가 1위를 달리던 유벤투스를 1-0으로 이기며 순위가 올라 보루시아를 승점 1점차로 제치고 3위로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따내어서 보루시아는 4위로 탈락, 리그에 전념하게 되었다.
루시앙 파브레가 사임한 후 2군 감독 안드레 슈베르트가 대행감독을 임시로 맡게 되었는데, 바인치얼의 아우크스부르크를 4:2로 털어버리며 분데스리가 시즌 첫 승 기록. 파브레와는 다른 공격적이고 활발한 전방압박이 효과를 본 듯하다.[16]
슈베르트 감독대행의 문제가 수비에 있다고는 하지만....파브레가 있던 시점에도 수비는 기대이하의 수준이어서 아직은 큰 차이가 안 느껴지는 듯하다. 그래도 14/15시즌이나 11/12시즌 파브레 감독의 묀헨글라트바흐에 비하면 수비가 좀 불안한건 사실. 그리고 헤어만과 슐츠가 다시 부상을 끊어 큰타격이 왔다..
챔스4차전결과 유벤투스와 무승부를 내어서 결국 승점 2점으로 남은 경기결과에 상관없이 광탈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분데스리가에서 초반 5연패 이후 6연승 등 8승2무로 급격한 상승세에 있다. 그리고 12월 5일 15라운드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3:1로 이기며 올시즌 분데스리가 14경기 무패를 깨트렸다. 팀 순위는 3위로 반등. 그러나 16라운드에서 레버쿠젠에 0:5 대패를 당하며 10경기 무패 행진이 마감되었다. 전반기 마지막 경기 다름슈타트에 홈에서 3:2로 승리하며 9승2무6패 34득점 30실점, 4위로 마쳤다.
후반기는 홈경기와 원정경기 시 경기력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결과를 보이며 널뛰기 행보를 보였다. 후반기 홈경기에선 첫경기 도르트문트에 1:3으로 패한 뒤 남은 7경기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후반기 원정경기에서는 8경기 2무6패로 좋지 않았다. 레버쿠젠, 샬케, 헤르타베를린, 마인츠와 챔피언스리그 경쟁 5파전 양상이 지속된 가운데 32라운드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 뜻밖의 1:1 무승부를 거두며 4위자리로 올라갔고 33라운드 레버쿠젠과의 홈경기에서 안드레 한의 2골로 2:1 역전승을 거두며 사실상 4위를 확정지었고,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하였다.

2.8. 2016-17 시즌


팀의 핵심인 그라니트 자카아스날 FC로 이적하였고, 그 금액으로 크리스토프 크라머야닉 베스터가르드를 영입하였다. 일찍이 영입을 마무리 지어 놓으며 나름대로의 더블스쿼드는 구축.
분데스리가 1라운드 레버쿠젠과 홈에서 맞붙었는데, 묀헨글라트바흐는 3백에서 측면으로의 전개에서 강점을 보여주고, 크라머도 탈압박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2-1 승리를 기록, 3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을 홈에서 4:1로 털면서, 지난시즌 같이 홈 극강의 모습은 유지되나 싶었지만, 잉골슈타트를 홈에서 맞닥뜨려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이고 2:0으로 겨우 승리한 이후로 리그에서는 홈에서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는 중이다 .[17]
한편 원정은 여전히 처참하다. 2라운드 프라이부르크 원정에서 후반에 3골을 먹히며 역전패했고, 4라운드 라이프치히 원정에서는 어찌어찌 파비안 존슨의 골로 기적의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6라운드 샬케 원정에서 4:0 치욕스러운 대패를 기록하였고, 8라운드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 2:0 패배[18], 10라운드 헤르타 베를린 원정에서도 3:0 패배, 13라운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1:4 패배를 기록, 이번시즌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는 원정 6전 1무 5패[19] 3득점 17실점이라는, 강등권 수준의 원정경기력을 보인다.
원정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최근 샬케전 대패 이후로 묀헨글라트바흐는 리그에서 5경기동안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으며, 5전 2무 3패로 승리를 챙기지도 못했다. 6라운드 샬케전부터 13라운드 도르트문트전까지 리그 8경기 0승 3무 5패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가능한 4위와 12점 차이가 나는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페이스가 지속되면 전반기 끝나고서는 강등권 살짝 윗 쪽에서 놀지 않을까 예상중....
14라운드 마인츠와의 홈경기에서 크리스텐센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 리그 8경기 무승의 수렁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전반기 마감 전 15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 원정과 16라운드 볼프스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 1:2로 패했는데 두 팀 모두 하위권에 처져있는 팀이었다. 결국 2016년을 4승4무8패, 15위 브레멘에 승점은 같고 골득실에서만 앞선 초라한 14위로 마감하고 말았다. 결국 지난해 대반전을 만들었던 안드레 슈베르트는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경질되었고 볼프스부르크를 이끌었던 디터 헤킹이 그의 후임 감독이 되었다.
챔피언스리그의 경우, 플레이오프에서 영보이스를 만나 1,2차전 합계 9-2로 이겼다. 조별리그에서는 바르샤-맨시티 -MG-셀틱이라는 죽음의 조가 조성되었다.
1차전 맨시티 원정에서 4:0으로 대파당하며 사스가 원정호구스러운 모습을 면밀히 보여줬다[20] 2차전 바르셀로나 전에서는 나름 홈에서는 한 몫 한다는 모습을 보였지만, 초반의 무리한 체력소진으로 결국 1:2로 패배를 기록하였다. 3라운드는 유럽의 강팀들도 힘겨워한다는 셀틱 파크 원정이어서, 거의 전 세계 공인 원정호구라고 낙인찍힌 묀헨글라트바흐가 패배할 것이라는 의견이 좀 더 많았었지만....원정호구 답지 않게 3차전 셀틱 원정에서 2:0으로 이겼다! 9개월간 고수하던 3백을 버리고 4백으로 전환한 것이 효과를 보았다. 4라운드는 홈에서 원정에서도 잡은 셀틱을 상대하기 때문에 충분히 잡을거라 예상들이 있었지만, 부진한 경기력과 동시에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묀헨글라트바흐는 챔스 16강 진출이라는 일말의 희망과 동시에, 쉽게 갈 수 있었던 조별예선 3위 유로파 직행도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이며 노려보게 되었다.
결국 5라운드 홈에서 맨시티와 무승부를 기록, 6차전 결과에 상관없이 유로파를 확정지었고, 6차전 캄프 누 원정에서는 4:0으로 시원하게(?!) 대패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자카의 공백을 전혀 메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밥값을 해주던 크라머도 장기이탈인 상황이고, 자카와 같은 패서가 없다보니 다후드를 활용할 방안을 못잡고 있는게 현 상황. 그나마 후반기에 승점관리가 이루어지며 유로파리그 진출에 대한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듯 보였으나, 마지막 리그 3경기에서 모두 무승부를 기록하는 바람에 최종 성적을 승점 45점, 9위로 마감하며 차기 시즌을 기약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2.9. 2017-18 시즌


포칼 첫경기와
리그 개막전 라인 더비인 1.FC 쾰른과의 경기에서 각각 1골차 승리를 거두며 시즌을 시작!
그 이후 FC 아우크스부르크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RB 라이프치히 3연전에서 무패무를 기록하며 흐름이 꺾였다고 하긴 뭐하지만 그냥 안 좋아졌다. RB 라이프치히와의 경기는 그 유명한 나비 케이타크라머 면상킥으로 퇴장당한 경기이다. 그 이후로 크라머가 트라우마 때문인지 원래 죽었던 폼 탓인지 후반기 초반까지 별 활약을 못보이더라 하더라...
3연무승 이후로 5R 슈바벤전 승리부터 13R 바이언 전 승리까지, 그리고 중간의 뒤셀도르프와의 DFB포칼 2R도 합친 10경기의 전적은 정말 화려하다. 중간에 도르트문트전과 레버쿠젠전에서는 상대 공격진의 빠른 스피드와 대비되는 수비진(특히 베스터고르)의 굼벵이급 스피드로 인해서 뒷공간을 수도 없이 털리며 각각 1:6, 1:5로 대패를 했지만 그 외의 8경기에서는 7승 1무의 성적. 털릴 땐 확실하게 내어주지만 잡을 건 다 잡는 멋진 녀석들
11월 26일, 13R에서 바이언을 잡아낸 경기는 정말 파브르 시절의 442를 떠오르게 하는 그런 끈끈한 퀄리티 넘치는 경기였다.
여기까지가 딱 좋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챔스 다시 가는 줄 알았다 는 페이크.
그리고 12월 4일, 뵐페 전을 전후로 모든 것이 뒤바뀌고 말았다. 그 요인 중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은 주요 '측면' 자원들의 부상이라고 할 수 있다. 11월 초쯤 측면 자원인 호프만트라오레의 2달 이상의 결장, 그리고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또다른 측면자원들인 헤어만, 존슨, 토르강이 각각 2주, 2달, 며칠동안 쓰러지며 헤킹이 그다지도 잘 써먹지도 못하던 그리포(이는 9번 격수가 없는 탓도 있다. 그리포 성향상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나 활동량 기동력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고, 오로지 킥력 원툴이었다.)만이 부상을 당하지 않은 가용자원이었던 것이다.
2016/17시즌 도중 부임 후 자신의 색깔을 입히기보다는 몇년간 유지되어왔던 팀의 색깔인 정통 공격수가 없는 442을 유지하고자 했던 헤킹. 그에게 플랜 A로서 측면 자원이 두 명이나 필요한 442에서 이들의 줄이은 이탈은 매우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다. 올시즌 공격방향은 좌, 중, 우 중에서 우측이 거의 50%에 가까운 비중이었기 때문에 우측 미드필더인 헤어만과 호프만의 이탈은 가뜩이나 한정된 공격 루트 또는 부족한 창의성에서 단점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14R 뵐페전 패배를 시작으로 23R 도르트문트전 패배까지, 그리고 중간의 레버쿠젠과의 DFB포칼 3R 베일리에게 결승골을 헌납한 패배를 포함한다면 11경기에서 2승 1무 8패.
특히나 그 끝의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치히, 슈투트가르트, BVB전에서의 4연패는 막판 챔스 및 유로파행을 두고 경쟁해야할 팀들에게 진 것이니 결과적으로 그 희망을 송두리째 뽑아갔던 경기들이었다.
(최종 성적 : 프랑크푸르트 - 8위이지만 포칼우승, 라이프치히 - 6위, 슈투트가르트 - 7위, BVB - 4위)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측면 자원들의 이탈, 그로 인해 헤킹은 442 대신에 간헐적으로 4231 또는 343을 활용해 위기를 탈출하고자 했으나 그 경기들에서는 전패하였다. 이 기간의 8패 중 0:1 패배가 5번일 정도로 그럼에도 실점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리고 89분 이후 결승골을 먹으며 진 경기도 3번 정도 있기도 했다.
팀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을 수 밖에 없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케이타의 희생양 크라머가 갑자기 호날두와 메시를 뺨때릴만한 활약으로 돌아온다.
24R 하노버와의 홈경기
쟈카면 몰라도 크라머의 중거리슛이라고 하면 트레이닝 때나 볼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중거리골이란다. 그것도 주발이 아닌 왼발이란다. 그리고 발리란다. 그게 결승골이란다!!
1:0 승리를 가져오는 왼발 결승 중거리 발리골을 기록한 크라머는 그 골을 제외하더라도 혼자서 수비진을 파괴시키며 3~4명 사이를 요리조리 탈압박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보인다.
물론 이 골로 인해 그 후의 경기들도 잘 풀렸으면 좋으련만 승점을 쌓기는 힘겨워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25R 브레멘 전에서 마치 크라머 형이 하면 나도 질 수 없어! 라는 듯이 중원 파트너인 자카리아가 엠게 리그 데뷔골 + 자책골을 직접 유도하는 총 1.5골의 활약을 펼치었다. 이렇게 전반전 2:0의 스코어로 무난하게 2연승을 하는 줄 알았지만 여지없이 델레이니와 조핸슨에게 실점하여 2:2 무를 기록하고 만다.
그리고 27R 호펜하임전, 이 경기는 브레멘 전과는 반대의 양상이었다.
전반 초반 선제 실점으로 시작하여 드르미치의 동점골, 추가 실점으로 이어졌지만 또한 슈틴들의 동점골, 그리고 세번째 실점을 허용하였고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으나 긴터의 극장골로 3:3 명승부를 기록하였다.
이 경기를 기준으로 드디어 드르미치가 터지기 시작했다. 이후로 바이언에게 선제골을 넣으며 잔뜩 화를 돋구며 괜히 당하지도 않아도 될 5:1 패배를 유도하기도 했고, 홈 최종전에 이어 원정 최종전까지 득점을 기록하며 시즌 막판의 4골만으로 MG에서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그리고 드르미치는 2019년에 FA로 풀린다.)
드르미치가 어떤 존재인지 굳이 비유해보자면 바이언의 헤나투 산체스, 맨유의 알렉시스 산체스, 한 마디로 먹튀라는 것이다. 클럽 규모나 계약 규모는 좀 더 작겠지만..
막판에 프랑크푸르트의 DFB포칼 결승 진출로 인해 7위를 기록해도 유로파 티켓을 가져갈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우승 클럽에게는 유로파 조별리그 직행 티켓을 준다.
(DFB 포칼 결승 상대는 바이언과 프랑크푸르트.)
시나리오 1 - 만약 바이언이 우승시 리그 5,6위는 유로파 조별리그 직행, 7위가 유로파 2차예선.
시나리오 2 - 프랑크푸르트가 우승시 리그 5위(유로파직행),6위(유로파 2차예선행), 7위 대신 프랑크푸르트가 유로파 조별리그 직행.
그러나 최종전에서 그 전에 이미 첫 강등이 확정된 함부르크에 완패하였고 상심했을 그들에게 조그마한 위로를 주며 다음시즌 서로 리그에만 집중하자는 큰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그에 보답한건지 신이 난 함부르크 열성 팬들은 빨간 불(홍염)을 마구 터뜨리며 오랜시간동안 자축하기도 했다.(감동적인 마지막?!)
레버쿠젠 5위, 라이프치히 6위에 이어 슈투트가르트가 리그 최종전에서 바이언을 상대로 4:1 대승을 하며 결국 7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포칼 결승에서 프랑크푸르트도 바이언을 잡으며 본인들이 유로파 직행을 한다.
슈투트가르트은 좋다 말았고 묀헨글라트바흐는 좋다 말았다도 아닌 그냥 좋지도 않았다.
시즌 결산을 해보자면 파브르로부터 이어진 한 챕터를 이제는 마무리하는 시즌이라고 볼 수 있다.
강등권에서부터 챔스권까지, 분데스리가에서 끈덕진 442로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 제시, 결국에는 계속되는 주전들의 이탈과 몇몇 좋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떠나게 되었던 파브르 감독의 향수는 442가 아니면 내가 아니게 된 선수들만큼이나 짙게 남아있었지만 이제는 보내주어야할 때, 안녕히 가세요! 라고 아름답게 마무리지어질 수 있는 시즌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MG는 지난 몇년간 2선 성향을 가진 투톱들을 앞세운 442로 나름의 성공을 거두어왔다. 사이드 이펙트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나름 야심차게 영입했던 9번 공격수들을 싸그리 망해왔다는 것이다. 보바디야, 이고르 지 카마르구, 루크 데용(에레디비지에 복귀하자마자 득점왕도 먹고 현재 2018/19시즌 챔스 조별리그에서까지 귀신같이 날라다니는 중), 드르미치, 미케 한케(이 중 나름 성공작) 등은 모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반면에
2선 성향의 포워드로 막스 크루제, 하파엘, 라스 슈틴들, 토르강 아자르 등은 모두 투톱에서 살아남았고 팀의 주축이어왔다.

2.10. 2018-19 시즌


'''자세한 내용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2018-19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 분데스리가: 5위

2.11. 2019-20 시즌


'''자세한 내용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2019-20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 분데스리가: 4위
여담으로 이 시즌까지 도이체 포스트가 유니폼 메인 스폰서이다.

2.12. 2020-21 시즌


'''자세한 내용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2020-21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3. 선수단


[image]


4. 응원가



'''Elf vom Niederrhein'''

5. 여담


1970년대 유럽 무대에서 지겹게 만나는 리버풀[21] 팬들과 친밀해져서 훗날 1989년 힐스버러 참사 때는 그들을 위해 기금도 마련했다.
뮌헨과 헷갈리는 발음 때문에[22] 글라트바흐라고 줄여쓰기도 한다. 발음도 그렇고 철자 역시 어지간히 헷갈리기 때문에 다른 언어권 사용자 입장에선 부를 때나 쓸 때나 꽤나 어려워하는 팀이기도 하다. [23]

6. 유명 선수


프랜차이즈 선수/축구/독일#s-9

7. 둘러보기




[1] 독일어 독음으로는 '보루시아 페어아인 퓌어 라이베스위붕엔 노인첸훈더트 묀헨글라트바흐 에파우(Eingetragener Verein; 아인게트라게너 페어아인)'이다. '보루시아 스포츠클럽 1900 묀헨글라트바흐 등록사단법인'이란 뜻이다.[2] 보통 라인강 인근 클럽 간의 더비를 라이니셰스 더비(Rheinisches Derby) 또는 흔히들 줄여서 부르는 라인 더비(Rhein Derby)라고 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쾰른과 글라드바흐의 더비이다.[3] 참고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보루센 더비는 애초에 보루시아의 어원이 각각 다르기도 하고, 2000년대 이후 언론이 만든 더비이기 때문에 서로 라이벌 관계는 아니다.[4] 앰블럼 모양을 형상화, HSV 함부르크도 비슷한 이유로 위 문구를 사용하기도 한다.[5]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1964년 개편 이후 1~4회 우승 시 별 1개(★), 5~9회 우승 시 별 2개(★★), 10~19회 우승 시에는 별 3개(★★★), 20~29회 우승 시에는 별 4개(★★★★)를 부착할 수 있다.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함께 역대 분데스리가 우승 공동 2위(각 5회)이며, 별 2개를 부착하고 있다. 여담으로 1위는 FC 바이에른 뮌헨이다.[6] 모두 UEFA컵 시절에 우승한 기록이다.[7] 바이에른 뮌헨을 데리고 트레블하신 그 분 맞다.[8] 12번째 선수인 팬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영구 결번으로 지정해 놓았다.[9] '''M'''önchen'''G'''ladbach[10] 글라트바흐는 전통적으로 20대 초반의 선수들을 많이 기용하는 팀이기도 하다. 망아지라는 별명이 맞는 셈[11]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최초로 창단된 클럽은 아니었다. 자세한건 1. FC 묀헨글라트바흐문서 참조.[12] 당시 UEFA컵은 리그 2,3위팀이 나가는 대회로 지금보다 위상이 더 높았다.[13] 이 때 활약한 프랑크푸르트의 선수가 바로 차범근.[14] 잠정 은퇴했다가 2008-09시즌 막판 챔스 진출 실패 위기에 빠진 바이에른 뮌헨의 소방수로 현장에 복귀한다.[15] 개막전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뒀다.[16] 파브레 감독이 부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크루제, 크라머라는 핵심에 가까운 자원들이 이적한데 비해 대체자랍시고 데려온 드르미치, 슈틴들은 이 역할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들을 그렇게 쓰려고 했으니 잘 안먹혔을거란 생각이 든다. 또한 주축 수비수인 알바로 도밍게스 역시 부상크리였다. 아직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현재 슈베르트 체제에서 슈틴들은 제 옷을 입은 듯 하며, 공격전개가 살아났다.[17] 7라운드 함부르크와의 홈경기에서 안드레 한과 라스 슈틴들이 페널티킥 2개를 날리고 다른 슈팅은 골대를 맞고 아들러 선방에 막히며 0:0 무승부로 홈 연승을 10에서 마감했다.[18] 이로 인해서 바이에른 뮌헨은 최근 2시즌 동안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였던 묀헨글라트바흐 슬럼프를 깼다.[19]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가 원정호구, 원정고자란 소리를 듣는게 단지 이번시즌 이 기록만으로 인해서는 아니다. 지난 시즌 레버쿠젠 원정 5:0 대패 이후, 지금까지 원정 17경기동안 묀헨글라트바흐는 1승 4무 12패라는, 승률이 두 자릿 수도 안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심지어 새 시즌이 시작돼서도 이는 전혀 고쳐지지 못했다.[20] 이로 인해서 슈베르트 감독이 펩에게 강하다는 독일 언론의 대서특필은 다 허상이 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독일에서는 슈베르트가 펩의 크립토나이트라는 내용의 기사를 내곤 했었다[21] 리버풀 역시 1970년대 최전성기를 맞았다.[22] 연고지인 묀헨글라트바흐는 원래 '글라트바흐'였다가 같은 주의 베르기슈글라트바흐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뮌헨글라트바흐'로 개명되었고, 이후에는 다시 바이에른 주 뮌헨과도 헷갈린다는 이유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23] 2016-17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글라트바흐가 셀틱 원정 경기를 치른 날, 스코틀랜드 어느 펍에서 문 앞 안내 게시판에 셀틱과 붙는 팀의 이름을 'Borussia'까지만 적고 나머지 철자가 생각이 안 났는지 '''A German Team'''이라고 적어버린 사진이 해외축구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에 올랐다. 글라트바흐 트위터 계정관리자도 재미있었는지, 영어판 계정 이름을 한동안 'A German Team'을 놔뒀다고.